▲ 김신 편집국장
정부가 석유 선물 시장 개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일 기획재정부 임종룡 차관 주재로 열린 ‘물가안정대책회의’에서 석유시장 투명성 제고 방안을 논의한 결과다.
하지만 석유 선물 시장 개설이 과연 정부가 의도하는 것처럼 석유 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정부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석유 선물 시장 개설 가능성을 검토해 왔다.
2004년 한국선물거래소(현 한국거래소)는 금에 이어 두 번째 실물자산(Commodity)으로 휘발유를 선택하고 선물 시장 상장 여부를 검토했지만 흐지부지 됐다.
2005년 증권과 선물을 통합해 새롭게 출범한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일본 상품거래소인 토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선진 에너지 선물 시장을 벤치마킹하는 등 에너지상품의 선물시장 상장을 재추진했다.
특히 당시 거래소는 선물학회에 연구 용역을 발주해 휘발유와 등유, 경유, 벙커링 등 4개 제품의 상장 모델을 개발하고 다양한 토론을 거친 끝에 구체적인 상장 일정 까지 제시했고 규제개혁위원회까지 나서 석유 선물 상장의 걸림돌이 되는 규제 완화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역시 결실을 맺지 못했다.
2008년에는 아예 정부가 나섰다.
지식경제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석유가격 결정 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석유 선물 시장 상장을 제안했고 그 결과로 이듬 해 상반기까지 선물 거래 시스템을 마련하기로 의결한 것인데 또 다시 백지화됐다.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연례적으로 석유 선물 상장 추진 카드를 내걸고 다양한 논리 마련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상장에 성공하지 못한 것을 보면 그럴만한 사정이 분명 있다.
당시 석유 선물 상장 지지론자들은 석유 사업자간 자유롭지 못한 거래 시스템을 문제삼았다.
수평거래 금지나 석유사업자간 영업 영역 제한 등 특수한 석유 유통 시스템의 한계로 석유 선물 상장시 자유로운 거래가 보장되지 못하고 유동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비난해왔다.
독과점에 맛들린 정유사들이 석유 선물 시장에 내몰려 가격결정 과정에서 시장의 지배를 받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지만 석유 선물 상장 논의가 중단된 것은 비단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선물시장 개설이 정부 의도대로 가격 결정을 투명화시키고 시중 기름값을 안정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 조차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가 석유 선물 상장의 배경으로 제시하는 유가 안정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선물은 가격변동성 리스크를 관리하는 수단인데 유가를 내리고 안정화시키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면 실패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선물 시장을 개설할 경우 오히려 투기 세력 등의 시장 진입으로 가격이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선물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가격이 크게 움직이고 오히려 현물 시장이 요동치는 주객전도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현 정부 들어 석유 선물 상장의 장애요인으로 지적받아 왔던 석유수평거래나 업역 구분 등의 규제가 상당폭 해소되고 있다.
석유수출입 규제도 크게 완화되면서 선물시장 참입자가 늘어날 길이 터졌다.
그만큼 석유 선물 상장 여건은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석유 선물 시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여전히 ‘유가 안정화’에 맞춰져 있으니 잘못된 명분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는 이번에도 틀린 것 같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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