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면 불법이고 가짜면 가짜지 유사석유는 뭐냐?’

지난 21일 국회 실물경제포럼 주최로 열린 ‘유사석유제품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방문한 박희태 국회의장은 축사에서 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목을 받았다.

이날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서강대 이덕환 교수 역시 ‘유사석유’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품 휘발유와 유사해서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이덕환 교수의 지적이다.

실제로 유사(類似)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비슷하다’고 해석되고 있다.

풀이대로라면 유사석유는 정품석유와 비슷한 제품으로 해석해도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 셈이다.

정품과 비슷한 유사휘발유의 가격이 약 54% 불과한 점을 감안할 때 소비자 입장에서 유사석유를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석유사업자들에게 석유제품의 품질기준과 관리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석유사업법에서 ‘유사석유’라는 명칭을 처음 도입하게 된 시점은 오일쇼크를 겪은 이후인 1980년대 초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석유사업법이 제정된 1970년 당시에는 유사석유를 규제하거나 관리하는 규정이 없었던 것인데 유사석유에 대한 개념이나 인식이 부족했거나 또는 제조하거나 유통시킬 동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어찌 됐던 석유사업법에 ‘유사석유’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1980년대 초반 이후 약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이제 와서 용어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사석유라는 법률적 용어가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점검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등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내수 시장에서 소비되는 휘발유중 약 10%는 유사 제품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난방유인 보일러등유가 수송연료인 경유로 불법 전용되는 사례가 심각해지고 있다.

해상 면세유 불법 유통으로 한해 부정 탈루되는 세금만 3조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유사석유는 조세정의를 훼손시키고 환경오염 등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하지만 더욱 경계해야 하는 점은 유사석유를 제조, 유통시키거나 또는 소비하는 자들의 죄의식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교통 신호를 어기거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행위가 법을 위반하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힌 것은 맞지만 사회 통념상 용인되고 크게 제재받지 않고 있는 것처럼 유사석유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는 지나친 관용과 너그러움을 베풀고 있다.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 산하 소비자리포트의 대표인 송보경 서울여대 교수는 “유사석유만 놓고 본다면 우리 사회는 불법과 탈법을 장려하는 사회이고 정책 부재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고 개탄하고 있다.

유사석유에 대한 사회적 죄의식이 희박하고 불법에 대한 포용력이 비정상적으로 관대하다는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유사석유에 대한 규제와 단속의 빗장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용어에 대한 정의부터 재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사석유’를 대신해 ‘가짜석유’나 ‘불법석유’로 법률 용어를 대체하는 것을 정부는 고민해야 한다.

가짜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을 참인 것처럼 꾸민 것’이다.

불법은 말 그대로 ‘법에 어긋남’을 뜻한다.

서로 비슷한 사이를 일컫는 ‘유사’와는 어감이나 뜻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사석유에 태연했던 운전자가 불법석유나 가짜석유라는 용어로 전환된 이후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고 스스로에게 죄의식을 묻게 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 단속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물리적인 처방보다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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