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부는 수입 석유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취지로 수입 석유의 관세율을 꾸준히 낮춰 왔다.

비축 의무도 경감시켰다.

경쟁 촉진을 빌미로 동남아산 저급 석유제품을 도입하려 한다는 환경시민단체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휘발유 품질 규격 까지 낮췄다.

최근에는 저장시설 확보 의무를 줄이는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2005년, 석유수출입사업자가 시장에 신규 진출하기 위해서 저장시설을 자가 소유하도록 의무화했던 것을 풀어 임차 방식을 허용한 바 있다.

이후에도 저장시설 의무 확보 용량을 줄이는 조치를 취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석유수입이 활성화되지 않자 올해 들어서는 LPG를 비롯한 석유제품 수출입 신규 사업자의 저장시설 확보 의무를 없애주는 방안까지 고민했다.

공정위는 한국개발연구원에 의뢰한 연구 보고서를 토대로 수출입사업자로 등록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비축시설 확보 의무를 없애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빈국의 입장에서 민간 사업자에게도 수급 안보의 책임을 분담시키려는 절박한 이유 때문에 출발한 것인데 시장 경쟁 촉진을 이유로 공정위는 비축시설 확보 의무를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저장시설이 에너지를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어떤 방식으로든 비축 의무를 달성하면 에너지 수급 안보에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부가 제안하는 방식이 기상천외하다.

에너지 기업들이 건설한 비축시설을 신규 시장 참입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5만톤 규모의 LPG 저장탱크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약 810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사업자들간 저장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투자비를 아끼고 자원의 이용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업자가 동일한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신규 참입자에게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건설한 저장시설을 공동 이용하도록 허락할 것인가?

이런 이유 때문에 민간 사업자가 보유하고 있는 저장시설중 유휴 시설을 파악해 신규 사업자가 공동 이용할 수 있도록 강제화하자고 제안했고 반 시장적이라는 지적이 일자 이번에는 정부의 비축시설을 공동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석유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비축기지는 지난 해 말 기준 전국적으로 총 1억3900배럴에 달하는데 충유율은 88% 수준으로 1700만 배럴 정도의 여유가 있다.

LPG 역시 경기도 평택에 435만 배럴의 비축기지를 확보하고 있고 이중 384만 배럴이 채워져 있어 약 50만 배럴 정도가 비어 있다.

석유공사가 노르웨이의 스타트오일 등 해외 메이저사의 원유까지 유치하며 공동 비축 사업을 전개하는 판에 국내 민간 사업자들에게 남아 도는 비축시설을 내어 주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공동비축사업은 해외 주요 산유국 기업들의 원유를 유치해 보관료 수입을 거두는 동시에 에너지 위기시 비축 에너지를 우선 사용하자는 명확한 명분이 있다.

국가안보 시설인 정부의 비축기지를 민간 석유 수출입 사업자의 단순한 비용 경쟁력을 완화시켜 주기 위해 출입을 허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부가 이렇게 까지 무리수를 둬 가며 석유수입 사업자의 부담을 낮추려는 진정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시장에 선발 진입한 사업자에게 요구했던 막대한 저장시설 확보 의무를 신규 참입자에게는 면제해주겠다는 발상은 균형감을 잃고 있다.

민간 사업자의 비축시설을 공동 사용하도록 강제화하겠다는 발상은 시장 질서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무엇보다도 과연 원칙이 있는 것인가가 의문스럽다.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는 것은 훼손될 수 없는 절대 가치로 여기서 출발한 비축과 저장시설 의무 규제를 풀고 또 폐지하려는 시도는 시장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시장이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는 또한 예측할 수 있는 보다 분명하고 명확한 원칙이 제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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