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 공급사의 담합 과징금이 사상 최대 규모인 1조원대를 넘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정호열 위원장이 지난 8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정호열 위원장은 “LPG 담합 관련 과징금 규모가 1조원 정도가 되느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심사보고서 상으로 그 정도 규모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공정위는 지난 달 담합 관련 피심의기업들인 SK에너지와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SK가스, E1 등 6개 기업에 그간의 조사 결과물인 심사 보고서를 전달했다.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각 사별 과징금이 수천억원대로 알려지고 있으니 전체 과징금 규모가 ‘조’ 단위를 넘어서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공정거래위원장의 이번 발언에 앞서 대통령 까지 나서 LPG 담합 사실을 확인한 것 처럼 언급한 바 있다.

사정이 이러니 소비자들은 LPG 산업의 담합을 기정 사실로 여기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인 ‘조’ 단위의 과징금을 부과받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죄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가도 사상 최악인 상황이 되고 있다.

◆ 아직은 ‘혐의’에 불과할 뿐

자유 시장 경제에서 담합은 가장 죄질이 나쁜 행태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다.
그 만큼 정부 당국은 시장 감시에 철저해야 하고 처벌은 가혹해야 한다.

다만 담합 조사의 결과물이 계획된 것이라면 또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면 경계해야 한다.

공정위가 LPG 산업에 대한 담합 조사에 착수한 것은 초고유가가 한창이던 지난 해 6월의 일이다.

약 1년 3개월간의 지루한 조사 끝에 공정위는 LPG 공급사들의 담합 혐의를 포착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LPG 수입사들의 담합 사실을 단정짓는 것은 절차상으로 아직 이르다.
공정위가 피심의기업들에게 그간의 수사 결과물인 ‘심사보고서’를 전달하기는 했지만 그 효력은 일종의 ‘혐의’를 적시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보고서의 내용이 최종 확정되려면 전원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합의제인 전원회의에서 의결되지 않으면 심사보고서의 내용은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형사사건으로 따지면 피심의 기업들은 아직은 피의자의 신분으로 전원회의에서 혐의를 벗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원회의에서 담합 혐의가 확정되더라도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으로 결과를 번복시킬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LPG 담합이 확정된 것처럼 공식 언급하고 있다.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피의자에 대한 신분은 보호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물며 한해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이중 절반 이상을 해외 수출로 벌어 들이고 해외자원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담합 사실을 공공연히 확인시켜주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을 위시해 공정거래위원장까지 LPG 산업의 담합 사실을 사실상 확인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향후 열리게 되는 전원회의의 결과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바꿔 말하면 형사사건의 피의 사실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 부처장이 판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언급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국정감사와 10월 재보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이 민심을 잡기 위한 노림수로 LPG 담합 같은 이슈들을 재물로 활용하고 있다는 그럴듯한 해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석유산업이 자유화된 이후 2000년대 들어 매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에너지산업에 대한 담합 조사나 그 가능성에 대해 정부가 언급하지 않은 적은 거의 없었다.

일부 사건은 조사 기간만 4~5년에 걸칠 만큼 지루하게 진행된 경우도 있다.

그 사이 사이 공정위는 국정감사 등 민감한 이벤트를 앞두고 에너지 산업에 대한 담합 조사를 진행중이라며 끊임없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달에는 국정감사에 더해 향후 정치 판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재보궐 선거까지 앞두고 있으니 서민 물가 안정의 대표적인 수단인 에너지의 담합 이슈를 공론화 시키기에는 더 없이 좋은 시점인 것이 사실이다.

때 마침 정부는 이례적으로 정유사와 LPG 수입사에 더해 주유소 업계에 대한 담합 조사 사실 까지 발표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에너지 업계의 담합 관련 사실을 확인하려 해도 ‘조사가 진행중인 ‘사건’이라는 이유로 일체의 답변을 거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최근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가 내린 행정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 등을 제기한 비율은 올해 상반기 기준 56.1%에 달하고 있다.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은 대상중 절반 이상은 공정위의 결정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셈이니 기업들의 불공정 행태보다 더 시급한 것은 공정위가 보다 공정해지는 것이 아닐 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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