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에너지절약정책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선택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했는데 그중 유독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에너지 원가 요인을 반영해 공급가격을 책정하겠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른 바 가격기능의 회복을 통한 에너지절약을 촉진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현재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전력 제조 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는데 정부 방안대로라면 이 부분에도 생산 원가가 제대로 반영된 공급 가격이 적용받게 된다.

가스 요금 역시 적정 원가 수준으로 공급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전기와 가스 등 대표적인 에너지 요금이 오를 수 밖에 없게 된다.

제조원가에 충실한 공급가격을 설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정부의 이번 조치가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가 제시하는 에너지절약과 에너지원가 반영 간의 인과관계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의 비용 부담이 늘어 나면서 에너지절약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인데 정부가 희망하는대로 에너지 가격 변동에 대한 소비 탄력성이 뒷받침 되어 줄지가 의문스럽다.

지난 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대까지 위협하며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던 당시에도 휘발유 소비는 좀 처럼 줄어 들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 해 휘발유 소비량은 총 6293만배럴로 그 전년 대비 0.7%가 증가했다.

다만 경유 소비는 1억3451만배럴로 그 전 해에 비해 7.44%가 줄었다.

이 통계에서 굳이 에너지 가격과 소비 탄력성간의 상관관계를 찾자면 고유가 부담으로 운행 자제 필요성을 느껴야 하는 휘발유 운전자들의 구매 성향은 큰 변화가 없는 반면 생계와 직결되며 운행이 곧 경제활동으로 연결되는 경유차 운전자들의 정상적인 소비만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전에도 정부는 고유가 상황속에서 에너지 세금을 내려야 한다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대한 반대 논리로 에너지절약을 내세워 왔다.

세금을 내리고 에너지 비용이 낮아 지면 에너지소비를 오히려 촉진시킨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공공재의 성격이 짙다는 이유로 에너지 가격결정에 정부가 개입하고 통제하며 원가를 공급가격에 반영할 수 없는 상황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로 지난 해 정부는 한전과 가스공사의 손실을 보전하는 고육책을 동원하기도 했다.

따라서 에너지 원가를 공급비용에 반영하겠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정책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발생하는 공기업들의 손실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보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가를 공급비용에 반영시키겠다는 논리로 에너지절약을 연계시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에너지 세금을 내리라는 사회적 요구에도 또한 에너지 가격을 올리겠다는 정부 정책에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에너지절약 논리를 사용하는 것은 정부 답지 않아 보인다.

에너지 가격을 올려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당당하게 설명하는 것이 정부다운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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