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구조개편과 효율 향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가시적인 성과에만 급급하다 보니 일률적인 판단에 일방적인 요구로 오히려 공공기관들의 자율적인 경영 판단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등의 에너지 공기업들 사이에서는 조직개편이 유행처럼 일었다.

실제로 석유공사는 2006년 초반 성과 중심의 혁신을 추구하겠다며 관리형 업무조직을 사업형으로 재편했는데 그 수단중 하나로 결제단계가 축소되며 팀장에서 본부장을 거쳐 사장으로 이어지는 슬림화된 의사결정체계를 구축했다.

운영인력의 11%를 축소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슷한 시기 가스공사 역시 팀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을 추진하면서 178개 조직을 127개 조직으로 대폭 슬림화시켰다.

그렇다고 정부와 이들 공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희망하는 것 처럼 이들 조직의 효율화와 사업 성과가 극대화됐다고 단언할 수 는 없다.

지난 해 국정감사에서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조정식의원은 석유공사 임직원들의 위기감을 보여주는 자료를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석유공사가 자체 실시한 ‘비전 및 전략체계구축 보완에 관한 연구’의 결과를 공개한 것인데 공사 임직원들의 RWA(준비도-Readiness, 추진의지-Willingness, 내부역량-Ability)에 대한 의식 수준이 최소 요구 수준에 비해서도 낮게 나타났다.

외부환경에 대한 적극적 연구 추진이 부족했고 비전체계에 반영이 미흡했으며 과장급 이하 실무진들이 외부 환경변화에 대한 낮은 인식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는 충격적으로 받아 들여졌다.

미래비전 추진에 있어서 구성원들이 타 부서 구성원들로부터 사업추진에 대한 신속한 협조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조직내의 부서별, 직급별 불신의 벽이 높다고 조정식 의원은 분석하고 있다.

공공 서비스와 가치를 지향하는 공기업에게 지나치게 성과 지향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효율성만 강조한 결과로 비춰지는 대목이다. 특히 내부 융화와 화합이 훼손되고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조직의 비전이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판단할 수 도 있다.

실용정부 들어 또 다시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개편 작업이 진행중인데 일률적인 잣대로 재단되고 있다는 점이 여전히 우려스럽다.

가스공사는 현재의 6본부 6실(원) 체계에서 4본부 16처(실)로 조직을 변경하는 조직개편안을 이사회에 상정, 처리할 계획이었는데 정부와의 이견으로 무산된 상태다.

본부를 2개 줄이면서 과거 팀제 전환 과정에서 퇴출된 처, 실 급을 부활하겠다는 것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인데 가스공사측은 ‘다양한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효율적인 조직체계를 구축하려 한다’는 입장이고 정부는 ‘간부급 자리를 늘려 승진 기회를 확대하려는 처사’라며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의 필요에 의해 석유유통관리라는 어렵고도 새로운 사업을 떠맡게 된 석유품질관리원은 공공기관 4차 선진화 작업의 일환으로 인력과 예산을 10% 줄이고 1처 3개팀을 폐지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이 일방적으로 예산과 인력 감축을 통보받았고 구조개편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경영(經營)의 본질은 조직에게 주어진 재원의 능력과 가치를 극대화시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직의 규모를 최소로만 지향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조직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것도 지양해야 하겠다. 하지만 조직을 인위적으로 축소하는데만 열중한 경우투입되는 재원의 크기에 비해 경영의 성과가 상대적으로 커보이는 착시 현상을 유발할 수는 있겠지만 더 큰 경영 성과를 가져오지 못하거나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경영적 판단에 의해 조직을 늘리고 줄이는 것 까지 정부의 행정력이 일률적으로 재단하고 강요하는 것은 경영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라는 지적을 살 수 있다.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관리와 감시의 끈은 놓지 않되 공공기관 스스로의 경영적 판단으로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탄력적인 사고를 키워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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