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정유사 영업 담당 임원을 포함해 석유대리점과 주유소들이 세금 포탈 등의 혐의로 무더기로 적발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인천 해경은 수도권 일대를 중심으로 일명 ‘오더 장사’를 하는 석유대리점과 주유소를 적발했는데 서로가 무자료로 석유를 주고 받는 과정이 상당히 복잡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정유사 영업 담당 임원이 개입이 되어 있었을 정도로 당시의 석유 유통 시장은 관행적으로 무자료 거래나 각종 탈세 행위가 이뤄졌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석유나 술 처럼 부과 세율이 높은 상품들을 취급하는 사업자들은 늘상 세금 탈루 유혹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국세청이 주류 구매 전용카드제를 도입했겠는가?

변변한 저장시설이나 사무실이 없어도 전화 한 통화로 이른 바 오더 장사를 하는 경우는 석유유통시장에서 허다하다.

그 과정에서 세금은 탈루된다.

기름값이 높아질 수록 인기를 끄는 것은 가짜 세금 계산서 자료상들이다.

고유가 시대에 기름처럼 사업자들의 경비를 과다 산정해 이익 규모를 줄이고 탈세하기 쉬운 품목도 흔치 않다.

기름 쓰지 않는 사업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주유소들은 매출을 줄이기 위해 무자료로 석유를 구입하는가 하면 또는 거래 상대방이 구매 금액을 뛰어 넘는 세금계산서 발행을 요구하게 되면 오히려 매입 세금 계산서를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

석유 시장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실 석유 만큼 거래 과정이 단순한 품목도 흔치 않다.

법으로 유통의 흐름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매업인 주유소는 반드시 정유사나 석유수입사, 대리점으로부터 기름을 공급받고 고정된 사업장에서 실 소비자에게 판매해야 한다.

석유를 구매하고 판매하는 과정이 한 눈에 잡힐 법도 한데 세금 탈루나 무자료 거래, 가짜 세금계산서 거래 행위는 끊이지 않는다.

◆급격한 규제완화 경계해야

지난 2003년 대법원은 석유사업법 위반 여부와 관련한 판결에서 ‘석유 수평거래를 법에서 금지하는 취지는 법에 허용된 영업범위 또는 허용된 영업방법으로만 영업이 가능하도록 제한해 무자료 거래, 덤핑판매, 매점매석 등 건전한 석유유통질서를 저해하는 행위를 단속하고 건전한 석유유통질서를 확보하는데 그 입법이유가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역설적으로 수평적인 석유 거래를 허용하게 되면 무자료 거래나 덤핑 등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인 셈이다.

국세청은 최근 수도권과 충남 일대에서 가짜 석유 세금 계산서를 발행하고 무자료 석유 거래와 유사석유를 공급해온 일당을 적발했다.

이들 석유 자료상 조직이 부정 발급한 계산서 규모는 1조원을 뛰어 넘는다.

지식경제부가 최근 동종 석유 유통 사업자간 수평적인 거래를 허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과 절묘하게 대비가 되는 대목들이다

자유로운 석유 유통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는 백번 공감한다.

하지만 법으로 석유 유통을 제한하고 있는 지금도 다양한 편법과 불법이 판을 치고 있고 그 단순한 석유 유통의 흐름을 제도로 쫒아 가기가 힘든 상황인데 석유 유통을 자유화하게 되면 더 더욱 석유 유통의 투명성을 보장하기는 힘들어 진다.

물론 정부는 석유품질관리원을 법정단체화 시키고 유사석유 단속 기능에 더해 부정 석유 유통을 감시할 수 있는 역할을 맡기겠다고 밝히고 있다.

유통은 자유화하되 감시 기능은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국세청과 공조해 탈세 거래를 차단하는 방안을 강화하겠다고도 밝히고 있다.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앞선다.

석유 유통 시장이 혼탁해지면서 정부는 주류 구매카드제도를 벤치마킹한 유류구매카드를 지난 2004년 도입했지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실패로 막을 내렸다.

석유 유통 시장은 지금도 세무 당국에 의해 상시 감시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고 있다.

불법을 제도로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석유유통의 흐름을 시장 자율에 맡기는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장 흐름을 자유화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보다 면밀하게 검토, 분석하고 제도권을 벗어나려는 부정한 시도를 차단할 수 있는 보다 명확한 수단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가져야 한다.

어떤 경우든 정부는 최소한 시장을 자유화 했다는 공(功)을 얻을 수 있겠다.

하지만 석유 유통시장이 지금 보다 훨씬 혼탁해질 경우 관련 석유사업자들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많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사업자라는 멍에만 쓰고 이득도 없는 정부의 감시만 늘어날 수 있다.

급격하게 공적 규제를 풀고 시장에 맡기는 것은 정부나 시장 사업자 모두 경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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