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정부의 시퍼런 서슬에 기름업계가 침묵하고 있다.

실용 정부 출범 이후 기름값을 인하하겠다며 다양한 석유 유통 관련 정책을 쏟아 내고 있는데도 이해 당사자들은 어쩐 일인지 말을 아끼고 있다.

관련 사업자는 물론 에너지 정책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유가 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석유수입사 활성화 방안과 수평거래 허용, 상표표시제도 개선 처럼 석유산업 근간을 유지하는 정책들을 수정했거나 개선을 예고하고 있다.

완제품인 석유제품의 관세율을 낮춰 원자재인 원유와 동일한 수준의 관세가 적용되고 있고 한편에서는 석유수입업의 등록요건을 완화하고 비축의무를 줄이는 정책이 예고된 상태다.

탈세와 무자료 거래가 횡행해질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십년간 유지되어 온 석유 수평거래 금지 조항이 자유화되고 상표표시제도는 개선작업이 진행중이다.

이들 제도가 없어질 경우 석유사업법에서 석유산업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는 비축과 품질 정도만 남게 된다.

정부의 방향 설정이 옳건 그르건 관련 사업자나 전문가 집단은 자신들의 견해와 생각을 정부측에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방통행식 논리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인데 그 누구도 자신들의 생각을 좀 처럼 나타내려 하지 못하고 있다.

석유수입 활성화 조치나 석유유통구조 개선과 관련해 가장 큰 이해 당사자인 정유업계는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석유유통구조 개선작업들은 정유사가 정부에 밉보였기 때문이라고 정유업계는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

고유가 해결 방안으로 유류세 인하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확산한 배후에 정유업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가 고유가 해법으로 정유사를 타깃 삼아 경쟁의 여지가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 정유업계의 일반적인 관측인 것 같다.

국책연구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에너지 자원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정부가 제시한 석유유통구조 개선 방향과 관련해 공식적인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석유유통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정작 그런 입장이 공식화되는 것은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데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정부 입장에 반하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가시적인 성과가 있든 없든 또 중장기적인 석유산업 발전에 저해되든 그렇지 않든 일단 눈에 띄고 그럴싸해 보이는 수단들은 모두 동원할 수 밖에 없는 정부의 절박함에 자원 경제 전문가들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정부 각료도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한 지식경제부 이윤호 장관이 고유가 해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석유업계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참석 각료들에게 눈총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유가 이슈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정부지만 추가적인 유류세 인하가 어렵다면 정유사나 주유소 같은 석유 사업자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정책의 이해 당사자나 정책 참관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없는 경직성이 문제다.

정권 출범 초기인데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름값을 비롯한 물가를 챙기는 마당에 정부 정책에 토를 달며 미운 털 박히는 짓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정부가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석유 관련 제도 개선에 그 누구도 입을 열려 하지 않고 있다.

반대를 허용하지 않고 반박 논리를 펼치는데 겁을 먹는 환경, 조율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지 않다.

그저 나만 있으면 될 뿐이다.

그렇게 되면 정작 정부가 외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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